자기 배만 불리려다 낭패 당한다
己所不欲 勿施於人.(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마라.)
子貢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논어 ‘위령공’편)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로 해서 종신토록 실천하면서 살아갈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지 않는 것(즉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은 나는 싫어하면서도 남에게는 아무런 생각 없이 행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소한 내가 싫어하는 일을 무심코 남에게 강요하거나 하도록 내버려두지는 않을 것이다.
공자께서 평생을 실천하고자 했던 게 바로 인(仁)이었다. 그 인의 핵심은 바로 忠(충)과 恕(서)라고 하는데, 충은 자기 자신의 충실함을 뜻하고, 서는 남도 나와 똑같은 인격체이므로 나와 똑같이 생각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성경>에도 이와 비슷한 구절이 있다. 다만 그 표현 방식이 긍정문이라는 차이는 있다. “남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남에게 해줘라.(Do 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 네가 꾸중을 듣기보다 칭찬받기를 원한다면 너도 남에게 칭찬을 하라는 뜻인데, 이를 ‘기소불욕, 물시어인’에 대비해 보면 네가 꾸중 듣기를 원하지 않으면 남에게 꾸중하지 말라는 말이 되므로 거의 차이가 없다. 이러한 내용은 논어 ‘이인’편에서도 볼 수 있다.
子曰 參乎! 吾道一以貫之. 曾子曰 唯! 子出, 門人問曰 何謂也. 曾子曰 夫子之道, 忠恕而已矣. (논어 ‘이인’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꿰뚫고 있다.” 증자는 “네”하고 재빨리 대답했다. 공자께서 그 자리를 떠나시자 다른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말씀입니까?” 증자가 말했다. “선생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역시 공자께서는 여기에서도 평생의 생활철학을 인(仁)에 두고 그 실천방안으로써 충과 서를 들고 있음을 그의 수제자인 증자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훗날 공자학당의 실질적 후계자로 증자가 등장하는 것도 일찍이 스승 공자의 마음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게 큰 도움이 됐을 것으로 본다.
특히 이 대목은 철저하게 나와 남의 구분이 거의 가지 않을 정도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던 공자의 인의 실천을 알 수 있다. 공자의 이러한 충겮?중심의 생활은 그의 아들 백어(伯魚)와의 대화에서도 알 수 있다.
陳亢問於伯魚曰 子亦有異聞乎? 對曰 未也. 嘗獨立 鯉趨而過庭, 曰學詩乎? 對曰 未也. 不學詩 無以言. 鯉退而學詩. 他日 又獨立 鯉趨而過庭 曰學禮乎? 對曰 未也. 不學禮 無以立, 鯉退而學禮. 聞斯二者, 陳亢退而喜曰 問一得三, 聞詩, 聞禮, 又聞君子之遠其子也. (논어 ‘계씨’편)
공자의 제자인 진항이 공자의 아들인 백어에게 물었다. “당신은 아버지인 공자님으로부터 특이한 가르침을 들은 게 있겠지요?” 그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다만 아버님께서 일찍이 홀로 서 계실 적에 제가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가는데, ‘시경을 공부하였느냐?’ 하고 물으시더군요.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했더니, ‘시경을 공부하지 않으면 남과 말할 수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물러나 시경을 공부했지요. 다음 날 또 홀로 서 계실 적에 제가 종종걸음으로 마당을 지나가는데, ‘예를 공부하였느냐?’ 하고 물으시더군요. 이번에도 ‘못했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예를 공부하지 않으면, 남 앞에 설 수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러나 예를 공부했지요. 들은 것은 이 두 가지입니다.”
진항은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하였다. “한 가지를 물었다가 세 가지를 터득하였구나. 시경에 대해서 들어서 알게 되었고, 예에 대해 들어서 알게 되었고, 또 군자는 제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제자들과 특별하게 구별하지 않는다는 것)도 들어서 알게 되었다.”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공자께서는 자기 자식이나 일반 제자들이나 똑같이 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충과 서의 마음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경지 즉, 성인의 마음 씀이 아니겠는가? 훗날 이러한 생각은 무인(武人) 세계에 전해졌는데, 충겮??마음으로 부하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면서 전쟁을 독려해 전쟁에서 승리한 위나라 장수 오기의 일화가 있다.
하루는 오기 장군이 병사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주는데, 그 옆에서 보고 있던 병사의 어머니가 대성통곡하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의아해서 그 병사의 어머니에게 물었다. “장군께서 몸소 당신 아들의 고름을 빨아주면서 치료해 주는데, 왜 그렇게 우는가?” 그 여인은 이렇게 말했다. “장군께서 지난번 전투에서 저 아이 아버지의 고름을 빨아주셨는데, 열심히 전장에서 싸우다가 전사했습니다. 이번에는 저 아이 차례일 것 같아 제가 울었습니다.” (한비자)
이렇듯 나와 남을 똑같이 생각하는 충겮??정신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점이 바로 남의 처지를 배려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 함부로 떠든다든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할 때 남의 발을 밟았으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사람, 대중식당이나 심지어는 강의를 듣고 있는 시간에도 몰염치하고도 자랑스럽게 휴대전화를 받고 있는 사람, 금연 표시가 되어 있는 장소에서 뻔뻔한 모습으로 흡연을 하는 사람을 비롯해 우리 주변에는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도무지 본인 이외에는 고려할 대상을 보지 못하는 눈 뜬 장님과 같은 행동에 가끔 화가 날 때가 많다. 기업 역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상생경영의 기본이다. 현대의 기업경영은 경영의 모든 분야를 혼자서 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말하면 협력업체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수직적 분업으로 이뤄진다.
협력업체와 원청·하도급 관계를 형성한 상태에서 경영하는 게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규모 면이나 전문성에서도 결코 혼자 하는 것보다 낫다는 결론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은 수많은 부품 생산은 물론이고, 기업 내에서도 엔진 생산, 차대(섀시) 생산, 조립라인을 분리해서 생산한 후 완성차로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시장을 선도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기술적 결함이 발생했지만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처리하지 못해 소비자의 신뢰를 잃고 있다. 사실 이 문제의 근본 원인은 부품 생산업체를 통한 지나친 원가절감 시도로 보인다. 2005년 도요타의 도요타 생산방식(TPS) 연수 바람 속에 일본 나고야 공장에 간 적이 있다.
종업원들이 숨 쉴 틈 없이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방식을 보며 놀란 기억이 있다. 사람을 시켜 일하는 게 아니라 마치 사람이 기계보다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듯했다. 심지어 조립공들은 퇴근 후에도 좋아하는 맥주를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고 한다. 다음날 조립라인에 들어갔을 때, ‘두 시간 작업 후 10분 휴식’ 제도 아래서는 휴식시간 이전에 소변이 급하면 처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근로자를 한낱 기계로 보는 한, 작업자는 기계 수준의 작업 능률을 요구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비겁하게도 필자는 당시의 연수 소감을 써내면서 이런 상황을 신랄하게 비판하지 못했다. ‘우리도 벤치마킹해야만 한다’고 밋밋한 견학 소감을 제출했던 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당당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품 생산업체도 방문한 기억이 있다. 부품을 납품하는 협력업체를 여러 곳 방문했는데, 어떤 기업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도요타자동차에서 새로운 제품을 기획할 경우 거기에 필요한 새로운 부품을 요청받습니다. 도저히 원가를 맞추지 못할 상황이면 대체품을 제안해 원가를 낮추죠. 간신히 납품에 합의할 경우에는 대체품 개발을 채택하면서 절감된 금액을 원도급 회사와 절반으로 나누게 되는데, 다음 해에는 모두 원도급 회사에서 가져갑니다.”
부품회사의 경영은 적자가 나지 않을 정도의 이익을 유지시켜 주면서 마른 수건을 짜고 또다시 짜는 게 원가 절감 방식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수의 기업들이 위에서 말한 TPS 연수 과정을 한 번 이상 시행하면서 많은 걸 벤치마킹하고 있다고 전한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업들이라고 해서 이번 도요타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더욱이 원·하도급 경우, 대부분 원도급자가 하도급자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지나친 기회의 불균형을 개선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하도급 업체의 문제가 원청 업체로 옮겨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예를 들면 외환시장이 불안할 때 발생하는 환차손을 무조건 하도급업체에 전가한다든지, 국제원유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때에도 가급적 이를 자체 소화하기보다는 협력업체에 떠넘기는 사례가 적지 않다면 우리 경제의 기반을 튼튼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할뿐더러 결코 오래갈 수 없을 것이다.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경제적 난관을 피해 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원청업체에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공존공영의 길을 모색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있는 기업이 없을 것이다. 이 문제의 해결책은 상생경영이다. 남을 나처럼 생각하는 충겮??정신이 글로벌 경제난을 극복하는 방책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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